66년간 주인이 5번이나 바뀐 쌍용자동차
이지아, 2021년 02월 01일
쌍용자동차(Ssangyong Motor) 로고
쌍용자동차(SSangyong Motor)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자동차 업체입니다. 현대자동차㈜ 설립 시기(1967년)보다 13년이나 앞선 시기인 195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쌍용자동차의 주인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 중 두 재벌 주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외국인 주인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영난에 빠진 쌍용자동차는 결국 2020년초에 10년 만에 다시 매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쌍용자동차의 66년 역사를 함께 돌아보겠습니다.
쌍용자동차의 역사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 창업
창업자 하동환 회장
1930년 개성에서 태어난 하동환은 자동차 정비공장 기술자로 일하던 1954년 24살 때 서울시 마포구 창천동에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는 물자가 귀하던 한국전쟁 직후라 미군 폐차용 트럭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창업자 하동환은 폐트럭을 불하받아 거기서 떼어낸 엔진과 변속기, 차축을 얹고 기차 레일을 구해 자르고 용접하여 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무 골조 위에 망치로 편 드럼통 철판을 입혀 버스 차체를 만들어 얹었습니다. 이 드럼통 버스가 쌍용자동차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생산된 하동환식 마이크로버스 20인승, HDH 마이크로버스는 미군용 3/4톤 쓰리쿼터의 구동장치와 엔진을 재생하여 만들었는데, 이 마이크로버스는 1950~60년대 여객 수송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 시내에서 달리던 버스는 하동환자동차공업이 제작한 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1966년에는 하동환 버스를 동남아시아의 브루나이(Brunei)에 수출했습니다. 이는 한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로, 현대자동차가 만든 포니(Pony)의 수출은 이보다 10년 이후의 일입니다. 이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는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동아자동차’로 상호를 바꾸고 1984년 ㈜거화(구 신진자동차)를 인수하였습니다. 이때 인수한 신진자동차는 1969년 미국의 카이저(Kaiser) 지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국내 최초로 민간용 지프를 조립 및 생산한 업체였습니다. 동아자동차는 이런 ㈜거화의 기술로 본격 4WD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며 4륜구동 전문회사로 하동환 자동차 공업소의 모습 발돋움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코란도(Korando)입니다.
- 하동환 자동차 공업소의 모습
- 드럼통 버스
- 한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 장면
- 동아자동차 사원연수를 진행하는 모습
쌍용그룹에 인수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하동환 회장은 창업 이래 무차입 경영을 선호했으나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큰 부담을 느끼고, 투자 여력이 있는 쌍용그룹에 1986년 동아자동차를 전격 매각했습니다. 당시 40세의 젊은 총수인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은 1조원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동아자동차를 인수했습니다. 1988년 쌍용은 동아자동차의 상호를 ‘쌍용자동차’로 변경하고 같은 해 11월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했습니다. 쌍용자동차는 1991년 독일 벤츠(Benz)와 기술 제휴를 맺은 뒤, 이듬해 중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독자 연구 개발체계를 구축했습니다. SUV 전문 기업으로서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죠. 1993년 쌍용자동차는 첨단 기술을 향한 의지로 독일 벤츠와 기술제휴를 통해 SUV 무쏘(Musso)를 출시했습니다. 이어 3년 후인 1996년 뉴코란도(New Korando)를 출시하며 쌍용자동차는 4WD 차량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쌍용자동차는 1992년부터 이어진 적자에 체어맨(Chairman)의 막대한 개발비까지 더해지면서 부채가 3조원을 넘은 데다 외환 위기마저 닥쳤습니다. 결국 쌍용그룹은 1998년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매각했습니다. 쌍용자동차의 부채를 쌍용그룹과 대우그룹이 각각 절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지만, 쌍용차가 남기고간 부채는 이후 쌍용그룹을 완전히 무너뜨린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시멘트, 제지, 정유 등 경기 부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이었기 때문에 쌍용자동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흑자 상태였고, 일부 적자 상태의 계열사도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쌍용차의 적자와 김석원 그룹 회장의 무리한 정계 활동으로 인한 경영 소홀로 그룹 상황이 악화되었고, 결국 재계 7위의 대기업 쌍용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해체되었습니다.
대우자동차와 합병
대우자동차(Daewoo) 로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1998년 1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쌍용자동차의 경영권을 인수했습니다. 대우그룹은 판매증대를 위해 대우와 쌍용차의 판매망을 단일화했습니다. 때문에 1999년형부터 무쏘(Musso), 체어맨(Chairman), 이스타나(Istana), 뉴코란도(New Korando) 등 기존 쌍용이 만든 자동차들이 대우 배지를 달고 출시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판매부진을 극복하지 못했고 대우그룹 전체가 무리한 확장으로 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기까지 하여 1년 만인 1999년 대우그룹은 마침내 공중분해되고 말았습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그룹 계열 12개사와 함께 쌍용자동차도 기업개선 작업 대상 업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쌍용차는 2000년 대우자동차에서 분리되어 나와 채권단 주도 하에 독자경영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상하이자동차에 인수
상하이자동차(上汽集团, SAIC Motor) 로고
채권단 관리 하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자체적인 경영 정상화에 들어갔고, 사업부문이 SUV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때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며 첨단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세그먼트별로 특화된 SUV를 출시했습니다. 특히 2001년 렉스턴(Rexton)을 출시하면서 SUV 시장에 또 한 번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렉스턴의 대박으로 기회를 잡는 듯했으나, 2004년 중국 상하이기차에 매각되어 큰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쌍용자동차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된 후 신차를 전혀 개발하지 않았으며, 어느새 쌍용자동차의 주력인 SUV 차량마저 현대자동차에 추월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쌍용자동차는 ‘짱룡자동차’라고 불리며 조롱을 받았으며, 중국의 인수 목적이 기술을 빼가기 위한 것이었다는 우려가 생겼습니다. 이 우려는 결국 2006년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 불법유출 사건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쌍용차 매각은 중국이 기술자립을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수십 년 만에 중국의 자동차 생산이 한국을 앞지르고 압박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선진국 자동차 회사의 합작공장은 존재했지만 하청 조립 수준일 뿐 핵심기술은 절대로 전수받지 못한 시절이었는데, 수십 년 간 발전시킨 국내 기술을 한 번에 중국에 통째로 넘겨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2008년 세계적인 유가 급등 현상으로 결국 쌍용차의 주력 차종인 SUV 차량 판매 감소는 급격한 매출 감소로 이어져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경영난과 파업 사태
상하이차는 세계 금융위기를 틈타 2009년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승인을 얻은 쌍용차는 정리해고를 실시했습니다. 3천명 이상이 해고되자 노동자들은 불법 파업투쟁을 단행하여 3개월 동안 직장이 폐쇄되었으며 노조는 장기 공장 불법 점거 파업에 돌입하였습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정부는 중국 업체의 먹튀와 대량해고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 잔인하게 강제진압을 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33명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파업이 장기간 이어지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2009년 8월에 다행히 77일 만에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쌍용차의 생산라인이 정상화되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쌍용차는 코란도와 렉스턴 시리즈의 SUV 기술을 기반으로 2012년 캠핑, MTB 등 야외 활동을 즐기는 드라이버를 위해 국내 유일의 레저용 픽업트럭인 코란도 스포츠(Korando Sports)를 출시했습니다. 쌍용차는 가까스로 청산을 면하고 법정관리 신청을 통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으며, 이듬해인 2010년 재매각이 추진되던 시점에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쌍용차의 새로운 인수 의향 대상자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1년 4월 인도의 자동차 회사인 마힌드라(Mahindra)가 쌍용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마힌드라에 인수, 그리고 그 후
마힌드라(Mahindra) 로고
인도의 자동차 회사인 마힌드라(Mahindra)는 쌍용자동차의 경영 안정화와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힌드라는 9억 달러의 기술 개발 투자를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2013년 쌍용자동차는 14만 5,649대를 판매하며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렸습니다. 2015년 1월 마힌드라 산하의 쌍용자동차는 소형 SUV 티볼리(Tivoli)를 출시했는데 티볼리는 렉스턴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며 쌍용의 재정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대기아차가 국내 시장에서 독점과도 같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쌍용차의 꾸준한 상승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흑자는 오래가지 못했고, 계속되는 경영 악화로 상황이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힌드라는 2020년 6월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재정난을 이유로 쌍용차의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쌍용차는 결국 자금 확보를 위해 부산물류센터와 서울서비스센터를 매각했지만, 2020년 12월 21일 은행에서 빌린 600억원을 갚지 못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쌍용자동차 주식은 거래 정지되고 말았습니다.
주요 모델
(1) 코란도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 초기 모델
코란도(Korando) 구형
2020 코란도(Korando)
코란도는 1974년 탄생해 국내 최장수 SUV로 국내 기네스북에도 오른 차종입니다. 코란도의 전신은 신진지프자동차공업이 1967년 10월 출시한 신진지프 모델입니다. 신진지프는 100마력의 6기통 가솔린엔진을 활용하여 4인승 캔버스탑, 하드탑, 3인승 밴, 12인승 웨건, 2인승 픽업 등 다양한 차량을 출시했습니다. 이때의 차량은 군납, 수출, 민관 등 다양한 수요처에 공급되며 한국의 지프 산업을 태동시켰습니다.
신진 지프 출시 이후 약 10년의 시간 동안 쌍용차는 국내 지프 시장을 이끌며 기술의 진보를 거듭했습니다. 거화는 신진지프의 모델을 전면 업그레이드하여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신진지프의 2세대 모델인 코란도 브랜드를 선보였고 1983년 3월부터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코란도(Korando)’라는 브랜드명의 뜻은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입니다. 당시 국내 자동차 브랜드의 존재감은 거의 없던 시절이지만, ‘우리 한국인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아래 탄생한 차량이 바로 코란도입니다. 당시 코란도의 기술력은 한국형 자동차의 대명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습니다. 한 가지 예로 1983년 체신부는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기리며 국산 자동차 우표 시리즈를 발간했는데, 첫 번째로 선택된 차종 중 하나가 바로 지프 시리즈의 ‘훼미리 디럭스’일 정도였습니다.
쌍용차는 스테이션 웨건형인 코란도 훼미리 등 새로운 코란도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1990년대 초기 코란도는 당시 벤츠 S클래스에 탑재되던 최고 수준의 엔진과 새로운 외부디자인 등을 통해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1996년 7월 출시된 신형 코란도는 국내 SUV 시장을 제패했습니다. 코란도는 ‘대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은 차’에 선정되며 9년간 누적 판매량 36만여 대를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랠리대회 우승, 환경부 연비측정 최우수 차 선정, 에너지 절약상 등의 다양한 수상경력은 그 당시 코란도의 인기를 말해줍니다.
출시 이후 9년의 시간 동안 높은 인기를 이어간 코란도는 쌍용자동차가 체어맨 등 대형 모델의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2005년 단종되었습니다. 이후 코란도는 4년이라는 긴 개발 기간을 거쳐 다시 탄생했습니다. 세련된(Classy), 우수한 승차감(Comfortable), 친환경(Clean) 등의 의미를 가진 코란도C는 높은 수준의 성능과 다양한 기능, 추가로 높은 수준의 연비를 선보였습니다. 코란도C는 2년 후인 2013년 8월 ‘뉴 코란도 C’로 다시 한 번 진화했습니다. 동시에 코란도 패밀리룩인 코란도 스포츠, 코란도 투리스모도 함께 출시했습니다. 이렇듯 코란도 시리즈는 국내 최초의 스테이션 웨건인 ‘코란도 훼미리’, 국내 최초 9인승 지프인 ‘코란도 9 디럭스’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 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코란도는 지금까지도 쌍용자동차의 대표 브랜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 렉스턴
구형 렉스턴(Rexton)
2021 렉스턴(Rexton)
1998년 대한민국이 IMF 경제위기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시기, 쌍용자동차는 힘들지만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SUV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렉스턴(Rexton)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설계단계부터 신개념 SUV에 걸맞은 디자인과 성능을 가질 수 있도록 대형 SUV 콘셉트로 개발돼, 2001년 렉스턴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렉스턴이란 이름에도 이러한 개발 목표를 담았습니다. ‘왕가’를 의미하는 ‘렉스(REX)’와 ‘품격과 기조’를 뜻하는 ‘턴(TONE)’을 합성한 것이죠. 쌍용자동차는 렉스턴을 통해 SUV 선두업체의 지위를 다지고, IMF로 위기에 빠진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마침내 렉스턴은 쌍용자동차를 대표하는 대형 SUV로 자리매김했고 2001년 출시 이후, 불과 26개월 동안 10만대를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렉스턴은 인기에 힘입어 고객 맞춤형 SUV로 진화하며 그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주로 도시를 달리는 운전자를 위해 2003년에는 ‘뉴 렉스턴’을 선보였는데요. 이는 렉스턴의 안전성과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도심 운행에 효율적인 2륜구동형 모델로 새롭게 시판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렉스턴은 2006년, SUV에서 세단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렉스턴 Ⅱ를 출시했습니다. 렉스턴 Ⅱ는 SUV의 스포티함과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최고급 대형 세단의 중후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한 모델입니다. 여기에는 쌍용차 최고급 세단인 뉴 체어맨(New Chairman)의 고품격 스타일을 그대로 하여 안전성과 운전자의 편의성 모두를 동시에 충족시켰습니다. 이렇게 렉스턴은 국내 SUV 시장의 고급화를 이루었으며, 대형 SUV 시장까지 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렉스턴은 G4 렉스턴, 렉스턴 스포츠&칸 등의 라인업으로 국내 대형 SUV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3) 티볼리
쌍용 티볼리(Ssangyoung Tivoli)
티볼리(Tivoli)는 쌍용자동차에서 2015년 1월 13일부터 생산하는 전륜구동, 4륜구동 소형 SUV입니다. 티볼리는 쌍용자동차가 인도 마힌드라에 인수된 이후 처음 내놓은 완전한 신차로서, 국내에서 소형 SUV의 대중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 모델입니다. 차명인 티볼리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의 휴양지 및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최초의 도심형 테마공원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티볼리가 출시되기 전 국내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으로 준중형 세단이 강세였고, 무엇보다 당시 소형 SUV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습니다. 하지만 쌍용차는 전통 SUV와는 또 다른 특유의 디자인은 물론 안전성, 편의성까지 모든 면에서 동급 최고 수준의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차 연구에 힘을 쏟았습니다. 연구 기간만 42개월, 총 3,500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결과, 2015년 티볼리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 당시 동급 최대 적재공간과 최대 전폭 등 다양한 편의사양을 갖춘 티볼리는 출시된 해에만 4만 5천 대를 판매하며 국내 소형 SUV 시장의 개척과 부흥을 동시에 이뤄냈습니다.
쌍용 티볼리 에어(Ssangyoung Tivoli Air)
쌍용자동차는 티볼리의 인기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티볼리의 첫 번째 인기요인은 다양한 라인업이었습니다. 소비 파워트레인에서는 가솔린과 디젤, 변속기에서는 수동과 자동, 구동 방식에서는 전륜과 사륜, 차체에서는 일반과 롱 휠베이스 등 빈틈없는 그물망 라인업으로 소비자들을 쌍용 티볼리 에어(Ssangyoung Tivoli Air) 사로잡았습니다. 사실 티볼리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디자인이었습니다. 티볼리는 여성들의 ‘첫 차’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시 이후 몇 년 동안 여성 자동차 검색 1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도 전체 판매량 중 여성 비율이 50%를 훌쩍 넘었습니다. 쌍용차는 2016년 티볼리의 롱바디 버전인 티볼리 에어(Tivoli Air)를 출시했습니다. 기존 티볼리가 소형 SUV이기 때문에 실내 공간이 작고 적재공간도 아쉽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었는데요, 티볼리 에어는 넉넉한 적재공간을 자랑하는 5인승 SUV로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출시 이후 꾸준한 수요가 있었던 티볼리 에어였지만 2019년부터 강화된 유로 6 환경규제를 충족시키지 못해 6월부터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2020년 10월, 쌍용차는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신차, 단종되었던 티볼리 에어를 부활시켰습니다. 브랜드 판매량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회사는 안정적인 투자 체제를 갖추지 못해 휘청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놓인 쌍용차는 티볼리 에어를 무조건 성공시켜야 했습니다. 그 결과 쌍용차는 티볼리 에어와 올 뉴 렉스턴 등 신모델 출시와 함께 코로나19 상황에 대응한 비대면 전략을 통해 2020년 하반기부터 2019년 수준의 판매를 회복했습니다.
경영난으로 인한 기업회생 신청
2020년 12월 21일 쌍용자동차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습니다. 자금난과 부채 부담이 심각한 상태임에도 법원은 쌍용차의 자율구조조정 신청을 받아들이며 회생절차를 2개월 연장했습니다. 2021년 1월 21일 산업은행 측은 두 가지 조건을 지킨다면 신규 투자 유치 전 마지막으로 쌍용차에 지원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첫 번째는 단체협약의 기간을 3년 단위로 늘리고, 두 번째는 쌍용차가 흑자를 볼 때까지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산업은행은 선언하였습니다. 회생절차 개시 여부 보류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최종 결정된 만큼, 쌍용차가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신규 투자자와의 매각협상 등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 내기를 바랍니다.
지난 66년의 역사 동안 쌍용자동차는 모두 다섯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최근에 쌍용자동차를 경영하던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차 포기 선언을 한 상황에서 앞으로 쌍용차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