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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무엇일까요?

이성정, 2020년 11월 23일

현대 생활에는 필수적인 과학 발명품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 중 편리성은 물론, 인류의 문화 발전과 경제 발전에도 엄청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과학 발명품의 집약체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당연히 자동차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동차들은 디자인도 너무 예쁘고 성능도 훌륭하며 여러 가지 첨단 기술들이 결합하여 정말 현대 사회에서 없으면 불편할 만큼 현대 사회 발명품에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들의 처음 모습은 어떤 모습이며,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사람을 누구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바퀴와 수레, 그리고 자동차


우선 인류의 첫 번째 자동차를 알아보기 전 자동차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바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가 바퀴를 가장 처음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으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퀴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무거운 것들을 운반하기 위해서 굴림대를 이용했었으나, 굴림대보다 더 편리한 운반 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바퀴를 발명했으며, 바퀴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힘으로 끌 수 있는 수레를 개발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여기서 발명을 멈추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운반 수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으며,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에 대해서 발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의 증기자동차니콜라-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의
증기자동차

니콜라-조셉 퀴뇨의 증기자동차


그렇다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자동차의 최초 모습은 언제부터였으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먼저 자동차의 최초 모습은 17세기 중반,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이후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1770년, 프랑스의 니콜라-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가 제작했던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에 의해 주행한 차로 유명했습니다. 증기자동차는 가솔린 자동차가 보급되기 이전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176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의 포병 대위 니콜라 퀴뇨가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 처음 발명의 시작이었으나, 실용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증기자동차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한 세계 최초의 3륜 증기자동차의 발명이었으며, 당시 육군 사령관이었던 스와솔 공작은 이에 흥미를 느끼고, 참모들에게 퀴뇨의 증기자동차를 시험토록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보일러와 2개의 실린더가 앞바퀴에 얹혀져 구동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조향하기 어려웠고 또한, 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브레이크 장치를 갖추지 않아 대형 증기자동차가 파리 교외의 언덕길에서 정지를 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큰 화재를 일으켜, 제1호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중지되었으나, 전륜구동의 이 차가 오늘날 자동차의 시조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증기자동차는 1826년~ 1836년에는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 버스가 영국 런던 시내와 첼트넘 간에서 정기적으로 운행하며 역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또한, 시대가 조금 지난 19세기 초에 주로 교외용 버스로서 유럽에 널리 보급되었고, 19세기 말에는 개인용 소형차도 보급될 징조가 보였으나, 보다 강력하고 간편한 가솔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단종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895년 내연기관에 의한 자동차라는 특허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1900년대까지 증기자동차가 생산되었으며, 그중에는 1930년대 중엽까지 존속한 것도 있습니다. 증기자동차는 성능이 우수하고 운전이 쉬웠으나 무게가 무겁고 불을 넣고 나서 주행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등의 결함이 있어 대중들에게 인기가 크게 유지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배기가스에 의한 도시공해라는 견지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전기자동차와 함께 증기자동차가 재인식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오스 예들리크(Ányos Jedlik)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아니오스 예들리크(Ányos Jedlik)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그 전에 우선 전기자동차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기자동차란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아 운행하는 자동차를 일컬으며, 석유 연료와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사용하고, 배터리에 축적된 전기로 모터를 회전시켜서 구동시키는 자동차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기자동차는 신기하게도 디젤 엔진,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오토사이클 방식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최초의 전기자동차는 1824년 헝가리의 아이노스 예들리크(Ányos Jedlik)가 발명했습니다. 이후 1830년부터 1840년 사이에 영국 스코틀랜드의 사업가인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이 전기마차를 발명했고, 1835년 네덜란드의 지브란두스 스트라티(Sibrandus Stratingh)와 그의 조수 크리스토퍼 베커(Christopher Becker)는 크기가 작은 미니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뒤이어 1842년 미국의 토마스 데트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데이비슨은 앞서 나온 전기차들보다 실용적이고 더 잘 작동하는 전자동차를 개발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1865년 프랑스의 가스통 플란테(Gaston Planté)는 축전지를 발명했으며, 이후 카밀 포레는 그 축전지를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저장용량을 가지게 하는 등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축전지의 개발은 전기자동차가 번창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축전지 개발 이후에는 냄새가 덜 나면서 진동이 적고 소음이 작도록 개발하였고, 또, 기어를 바꿀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져 특히 여성 소비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답니다.

하지만 큰 단점들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는 점입니다. 또한, 가격이 매우 비싸 상류층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기자동차가 다른 차량보다도 월등하게 많이 판매되었고, 1912년에는 생산 및 판매에서 정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당시 내연기관차는 시동 모터가 없어 차 밖에서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던 단점이 있었으나, 전기마차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 시동을 거는 일이 상당히 편리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전기차인 전기마차는 동력원인 전지의 충전이 불가능해 즉각적인 상용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플란테가 축전기를 개발하면서 전기차가 상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전기자동차는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걸까요? 답은 바로 내연기관차, 즉 가솔린 자동차에 답이 있습니다. 1900년대에 이르러 가솔린 자동차의 엄청난 발전으로 전기차의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08년 자동차의 왕이라고 알려진 헨리 포드(Henry Ford)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값싸게 가솔린 자동차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배터리가 무겁고, 충전시간이 길며, 값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는 전기자동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1920년, 미국 텍사스에서 대형의 유전이 개발되어 휘발유 가격도 폭락하고 말았고, 기름값이 싸졌으니, 결과적으로 가솔린차의 판매량은 폭증했습니다. 그 결과 상류층이 주로 타는 데다, 비싼 실크나 털을 둘러 귀족차라고 불리기도 했던 전기자동차는 1930년대에 이르러 완전히 인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우리가 알다시피, 내연기관차가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덕에 전기자동차가 잠깐 주목을 받았으나 유가 하락으로 인해 다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카를 벤츠(Karl Benz)카를 벤츠(Karl Benz)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글을 읽으시면서 도대체 사람들이 왜 자동차를 개발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셨나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당연하지만 편리한 운송 및 이동을 위해서 개발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 수단과 운송 수단은 인류 문명 발달에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중 가장 보편적인 육상 교통의 발전은 교역을 크게 증대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자동차는 19세기 육상 교통의 획기적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되며, 이러한 자동차 개발을 통하여 도로가 개발되고 덕분에 운송 및 이동 수단이 편리해지면서 공업화가 가속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인류의 발전이 급속화되었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자동차가 바로 가솔린 엔진 자동차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솔린 엔진을 최초로 탑재한 자동차는 무엇이며,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를 벤츠가 만든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카를 벤츠가 만든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
최초 가솔린 자동차는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이며, 메르세데스-벤츠의 공동 창립자 카를 벤츠(Karl Benz)가 1886년 제작한 3륜 자동차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이 녀석은 최초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개발한 것도 아니며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부착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현대 사회에서도 사용되는 ‘가속페달’, ‘스파크 플러그’, ‘클러치’, ‘라디에이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서 장거리 주행에 성공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운전자, 베르타 벤츠(Bertha Benz)세계 최초의 여성 운전자, 베르타 벤츠
(Bertha Benz)
여기에서 약간 로맨틱한 사연이 하나 있는데요. 당시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가솔린 엔진 기관은 잦은 고장 그리고 연료 보급의 문제가 있어서 실용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카를 벤츠’의 이웃들은 ‘카를 벤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다녔고, 이러한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그의 부인 베르타 벤츠(Bertha Benz)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하여 남편 몰래 아들을 태우고 106km 거리의 친정까지 주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가 되었다는 사연입니다.

이런 로맨틱한 스토리를 통해 독일 정부에서도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성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1888년 베를린에서 37435라는 특허 번호를 받게 되고서 이 모델은 특허받은, 특허권이라는 뜻을 가진 ‘페이턴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세상에 나온 지 1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자동차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디자인과, 16km/h라는 낮은 속력을 보여주었지만,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탄생으로 지금의 자동차 시대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대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의견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디젤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260D세계 최초의 디젤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260D

최초의 디젤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260D


가솔린 자동차에 알아봤다면, 다음은 최초에 디젤 자동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디젤 엔진의 시초는 1890년 독일의 공학도 루돌프 디젤(Rudolf Christian Karl Diesel)이 전기불꽃이 없더라도 시동을 걸 수 있는 안전한 엔진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돌프 디젤은 초등학교 시절에 과학시간에 학습했던 공기 압축식 불씨 통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엔진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894년 4년이라는 긴 시간의 연구 끝에 엔진의 기통 안에서 공기를 강하게 압축시켜 얻은 높은 열로 기름을 점화, 연소하여 폭발시키는 원리의 엔진인 ‘열 엔진’을 발명하여 특허를 받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와 같은 디젤 엔진은 그의 성을 따라 디젤 엔진이라 명명하였고, 효율성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크게 주목받으면서, 제3의 동력 혁명을 발생시켰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만에 디젤 엔진은 미국과 유럽의 광산, 선박용, 공장 엔진으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디젤 엔진은 당연히 자동차에도 탑재를 시도했습니다. 1922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으로 트럭에 장착해보았으나,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너무 심하여 승용차에 디젤 엔진을 장착하려 했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실패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꾸준한 연구를 실시했으며, 문제점을 개선하여 1936년에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용 디젤 승용차인 메르세데스-벤츠 260D를 출시했습니다. 처음에는 택시용 승용차로 사용되었는데, 이후 1970년대 초까지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소음과 진동 문제를 크게 개선하지 못해 승용차에는 디젤 엔진이 널리 장착되지 않았다가 1970년대의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디젤 엔진 자동차가 빛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디젤 엔진의 기술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 자동차에 디젤 엔진이 장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종 황제가 탄 다임러 리무진고종 황제가 탄 다임러 리무진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지금까지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알아보았다면 지금부터는 한국이 최초로 자동차를 사용한 시기는 언제인지? 또 최초로 제작한 자동차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한국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1903년으로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을 통하여 미국산 자동차 한 대를 전해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브랜드 및 종류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포드’, 아니면 ‘캐딜락’ 중 하나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후 고종 황제는 영국에서 다임러 리무진을 수입하여 탔습니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시발(始發)한국 최초의 자동차, 시발(始發)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최초로 제작한 자동차는 무엇이고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1955년 나온 국제차량제작소의 ‘시발’(始發)입니다. 시발은 시작의 ‘시’와 출발의 ‘발’을 합친 말로서, 한국 자동차의 첫 시작이자 출발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바ㄹ’이라고 풀어서 썼습니다. 영어로는 “The Beginning”이라는 뜻인데, 2015년에 독립 브랜드로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Genesis)와도 사실상 같은 뜻입니다. 시발 자동차는 국제차량제작소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고 있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가 설립한 회사에서 1955년 8월에 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5년 미국 군인들이 버린 윌리스 MB 지프를 주워다가 해체하여 쓸 만한 부품끼리 다시 조합하여 제작해 자동차의 형태가 지프 스타일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동차 ‘시발’은 자동차 차체부터 주물을 부어 제작한 엔진까지, 전부 대한민국의 힘으로 직접 제작한 최초의 자동차여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발’ 자동차의 가장 큰 의미는 이름 그대로 ‘시발’ 자동차의 탄생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 아닐까요? 이후 1967년 정주영이 설립한 현대자동차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조금 더 편리한 이동 수단과 운송 수단에 대한 인류의 욕심이 지금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발명에 대한 욕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동차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상 세계 최초의 자동차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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