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이야기
이슬, 2020년 12월 15일
기아(KIA) 로고
예전 기아자동차(KIA Motors) 로고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전설, 현대자동차의 치열한 경쟁자였던 기아자동차에 대해 알고 있나요? 현재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에 속해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차량의 부품들 또한 현대모비스에서 공급되어 기아자동차의 차량 대부분은 현대자동차의 차종과 주요 부품들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기아(KIA)라는 상호명으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영국 및 유럽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며 여전히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인 기아자동차의 역사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기아자동차의 모태, 경성정공의 탄생
기아자동차 창업자
김철호 회장기아자동차의 창립자인 김철호는 1922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1930년 삼화정공을 인수한 인물입니다. 삼화제작소에서 자동차와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여 수익을 얻음과 동시에 일본의 기계 산업 기술도 습득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패전으로 김철호는 한국에 귀국하여 자전거 생산기술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1944년 현재 기아자동차의 모태인 경성정공(京城精工)을 설립했습니다. 경성은 당시 ‘서울’을 부르는 말이었고, 정공은 정밀공업이라는 뜻입니다.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던 경성정공은 삼천리호 자전거를 출시하여 자본을 쌓았고 사명을 지금의 기아산업으로 바꿨습니다. 사명은 한자로 일어날 기(起), 버금 아(亞)를 써서 “일어나는 아시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 Gear(기어)의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1961년 일본 혼다(Honda)와 제휴하여 기아혼다를 설립하였고 이윽고 오토바이 제조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동양공업(현재의 마쓰다)의 부품을 한국에 들여와 삼륜차를 생산하여 큰 인기를 얻은 기아산업은 1973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에 종합자동차 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로써 기아자동차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기아의 신화, 봉고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에 공장을 세운 뒤 기아산업은 1975년 마침내 기아 최초의 승용차인 브리사(Brisa)를 출시했습니다. 브리사는 현대자동차 포니와 함께 국내 승용차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1981년 2월 정부가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신군부 정권은 한국GM은 승용차를, 기아산업은 화물차와 버스만을 만들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기아는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여 전문경영인 체제로 개편하고, 1980년 9월 봉고(Bongo) 1톤 트럭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봉고는 기아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의 마쓰다가 제작했던 동명의 상용차, 마쓰다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한 차량입니다. 다음 해인 1981년 8월, 이를 기본으로 한 12인승 밴 봉고 코치를 출시했습니다. 봉고 코치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이에 이어 6인승 봉고 밴, 9인승 봉고 나인으로 라인업을 넓혀 봉고 신화를 써내려갔습니다. 모든 승합차를 보고 봉고차라고 부를 만큼 봉고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누린 봉고에 대해 시리즈별로 알아볼까요?
봉고 코치(Bongo Coach)
봉고 나인(Bongo Nine)
봉고 타운(Bongo Town)
먼저 봉고 코치(Bongo Coach)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80년 봉고 트럭 모델이 먼저 출시됐으며, 이어서 출시된 12인승 승합차에는 트럭과 구분을 위해 봉고 코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봉고 코치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고객들에게 봉고는 곧 승합차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봉고는 최고속력은 115km까지 가능했으며, 최고출력 70마력의 2,209cc 디젤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1981년 5개월 동안 1,077대가 판매됐으며, 이후 1982년 1만 3,091대, 1983년 1만 8,947대, 1984년에는 1만 9,901대로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교회와 유치원, 병원 등의 단체나 기업을 중심으로 구매 붐이 일어났고, 국민소득 수준 또한 향상되어 레저 활동을 위해 봉고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성화에 힘입어 기아는 후속 모델인 9인승 봉고 나인(Bongo Nine)을 출시하였습니다. 뒤이어 수출 전략형으로 90마력의 1.4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여 출시된 봉고 타운(Bongo Town)도 봉고 시리즈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봉고 나인과의 차이점은 바로 엔진이 디젤이 아닌 가솔린이며 바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봉고 타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봉고차들처럼 앞뒤 바퀴가 동일하지만, 봉고 나인은 1톤 트럭처럼 뒷바퀴가 앞바퀴보다 작은 소형차 바퀴이면서 복륜인 형태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봉고는 1986년 후속모델인 베스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단종될 때까지 기아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베스타는 디젤 엔진의 결함 문제가 발생하면서 뒤이어 출시된 현대 그레이스와 쌍용 이스타나의 판매량을 앞서지 못하게 됩니다. 또 후속작인 프레지오는 기아자동차의 독자적 개발 플랫폼과 독자개발 J2 디젤 엔진을 적용하고 출시되었으나 이마저도 그레이스와 이스타나를 앞서지 못했습니다. 프레지오는 2004년 봉고3 트럭 출시와 함께 봉고3 코치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되었으나 내구성 문제로 인해 인기를 얻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봉고 프런티어(Bongo Frontier)
봉고3 EV
하지만 2020년 현재 여전히 봉고의 트럭 라인업은 기아가 현대에 인수된 뒤에도 꾸준한 인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봉고 트럭의 1세대는 봉고 승합차보다 먼저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이름은 기아 마스타 1톤 디젤로 출시되었는데, 이는 시판되면서 봉고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쓰다 봉고와 같이 헤드라이트가 둥근 형태였지만 이후 사각형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파워 봉고가 출시되었습니다. 파워 봉고의 후속으로 출시된 와이드 봉고는 초기에는 정사각형의 헤드라이트를 사용했지만, 정사각형은 3인승 일반캡에만 적용되었고 3인승 킹캡과 6인승 더블캡은 직사각형 형태의 헤드라이트를 적용했습니다.
1979년 봉고 프런티어(Bongo Frontier)가 출시되어 풀체인지가 이루어졌습니다. 봉고 프런티어는 다양한 크기의 모델로 출시되었는데, 현재는 운전면허시험 학원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오래된 트럭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4년부터는 봉고3라는 이름으로 풀체인지되어 출시되었습니다. 이 봉고3는 2012년 페이스리프트되어 2020년 현재의 봉고로 남아 있습니다.
기아 봉고3를 바탕으로 2020년 1월 6일 봉고3 EV 전기자동차가 출시되었습니다. 봉고3 EV는 기아자동차의 2020년 첫 신차이자 최초의 친환경 전기트럭입니다. 완충 시 211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135kW 모터와 58.8kWh 배터리를 탑재해 등판능력이 우수합니다. 또한 적재 중량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주행가능거리를 안내하는 첨단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아울러 낮은 적재고와 적재함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주는 평바닥 옵션을 통해 우수한 적재 편의성까지 갖추었습니다. 여러 가지 구매 보조금과 합리적인 유지비 등 기존 디젤차에 비해 높아진 경제성과 전동화를 기반으로 한 정숙성으로 소형 트럭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습니다.
서민의 기준, 기아 프라이드
기아 프라이드(Kia Pride)1986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면서 1987년 3월 생산을 시작하여 2017년 5월까지 30년간 생산되었던 프라이드(Pride)는 기아자동차라고 하면 프라이드를 떠올릴 정도로 상징적인 차량이었습니다. 프라이드는 대한민국 국민차의 대명사, 고성능의 실용적인 차, 합리적인 가격과 적은 유지비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 국내에 많지 않던 새로운 해치백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드는 안전하면서도 경제적인 소형차 콘셉트로 많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세대 모델이 판매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3년간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치지 않았으며, 기아자동차의 승용차 중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치지 않은 가장 수명이 긴 모델로, 2017년 단종될 때까지 글로벌 판매량 634만 1,634대 판매를 기록해 기아자동차㈜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이 되었습니다.
미니밴의 상징, 기아 카니발
기아 카니발(Kia Carnival)카니발(Carnival)은 제2의 봉고 신화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80년대 기아자동차의 성공을 이끈 대표 모델이자, 국산 미니밴을 대표하는 모델입니다. 국내에서 흔히 떠올리는 다인승 자동차로, 봉고와 같은 승합차와 카니발 같은 미니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을 태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에 뛰어난 공간 활용도를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데 봉고 즉 승합차는 앞쪽으로 돌출된 보닛 부분 없이 엔진룸을 차체 안쪽에 배치한 원박스 스타일에 프레임 바디 형식이지만, 미니밴은 앞쪽으로 나온 보닛에 엔진룸을 배치한 1.5박스 스타일에 모노코크 형식입니다. 카니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봉고형 승합차가 승용차의 느낌을 표방하기도 했지만, 승합차 특유의 투박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승합차의 한계를 느낀 소비자들이 새로운 승합차에 대한 갈증을 느낀 무렵인 1998년 카니발이 등장하면서 승합차 시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국산 승합차 시장에 1.5박스 형식의 새로운 미니밴 형식을 도입해 큰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지금은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할 정도로 카니발은 국산 승합차를 대표하는 모델이 됐습니다.
기아, 현대와 함께 나아가다
현대의 기아 인수1990년대 이후 자동차 산업은 기술의 발달과 시장의 개방으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카니발이 출시되던 해인 1998년 당시 국내에서는 외환위기로 인해 모든 기업들이 위험에 처하자 외국계 기업의 인수합병 대상이 되었습니다. 무리한 사세 확장과 잘못된 판단에 의한 과잉투자로 자금이 경색되고 부채가 증가하였고 결국 1997년 7월 15일 기아자동차는 부도가 나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IMF의 살얼음판을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기아는 계열사를 줄였고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1998년 4월 15일 기아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경영진은 사퇴하였습니다. 이후 현대, 대우, 삼성, 포드의 4개 회사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한 경쟁입찰에 참여했는데, 결국 1998년 11월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였습니다. 기아는 2000년 8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되었고, 2001년 4월에는 현대자동차 및 현대모비스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의 3대 축을 이루면서 회생의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의 인수 이후 불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며 성공적으로 회생하였는데, 이는 가장 효과적인 회생절차이자 국내에서 발생한 산업 분야 최고의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기아
1. 미국
기아 셀토스(Kia Seltos)
기아 텔루라이드(Kia Telluride)
1985년 미국에 처음 수출을 시작한 현대자동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미국 판매 법인을 설립하고 이듬해인 1986년 소형 세단 엑셀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진출한 지 불과 5년 만에 수출 100만대를 달성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는 1994년 미국에 진출하였고, 2003년 연간 20만대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여 2005년에는 수출 500만 대를 달성하였습니다. 2007년에는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슬로바키아 공장을 설립하여 옵티마, 쏘렌토, 텔루라이드를 생산했습니다.
2018년 기준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 진출 33년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문평가기관 켈리블루북(Kelly Blue Book)이 2021년 베스트바이 어워드를 통해 기아자동차 셀토스(Seltos)를 베스트 뉴 모델과 최고의 소형 SUV로 선정했습니다. 세련된 내외부 디자인과 동급 최고의 실내 공간 편의성, 시험 검증된 두 개의 엔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선택사양인 사륜 구동 시스템 등을 갖추었기 때문에 셀토스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기아자동차 셀토스가 소형 SUV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고 강조하며 선정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최고의 3열 중형 SUV 부문에서 2년 연속 텔루라이드(Telluride)를 선정했습니다.
2. 중국
기아 페가스(Kia Pegas)
기아 KX1(Kia KX1)
기아자동차의 중국 진출은 1988년부터 본격화됐습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중국 옌타이를 비롯한 공업, 산업화 지구의 기업들과 합작하여 미니버스 등을 함께 생산하였습니다. 또한 하이난성 등에 1톤 봉고 트럭 등 주요 차종을 수출하며 발달된 한국의 자동차 제조 기술력을 중국에 선보였습니다. 특히 당시의 수출 차량들은 중국 내 합작 법인의 상표가 아니라 기아자동차의 자체 상표로 수출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0년대 상용차 중심이었던 기아자동차의 중국 합작 생산 및 수출차량이 승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기아자동차의 승용차 라인업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기아자동차는 중국에 현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프라이드를 앞세워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에는 6,671대의 프라이드가 판매되었고, 이는 중국 경차 부문의 시장 점유율 4%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2003년 말부터는 오피러스를 수출했고, 2008년에는 모하비, 현지명으로는 보레고라고 불리는 차량을 수출하여 라인업을 확장시키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또한 2011년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수출한 K2, K3와 같은 차량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는 계속해서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 출시된 전략 소형차 페가스와 2018년 중국 전략형의 도심형 SUV KX1이 공개되면서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시대의 기아
기아 니로(Niro) EV기아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시대를 맞이하여, 쏘울(Soul) EV와 니로(Niro) EV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기아는 2014년 4월 쏘울(Soul) EV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장착하고 1회 충전 시 148km까지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배터리 기술 수준의 한계로 인해 주행거리가 짧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아는 2018년 니로 EV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니로(Niro)는 ‘제로에 가까운’이라는 뜻을 가진 Near Zero(니어 제로)와 ‘영웅’이라는 뜻을 가진 Hero(히어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니로 가솔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거쳐, 순수 전기차로 출시된 니로 일렉트릭은 356V, 64kWh인 리튬폴리머 배터리에 150kW 구동모터를 가지고 있으며,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385km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기아자동차는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여 기존 모델을 전기차로 변형하면서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초기 일본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에서 시작한 기아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는 모습,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로서 앞으로 큰 성장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