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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승용차, 현대 쏘나타

이지아, 2020년 12월 14일

현대자동차현대자동차쏘나타는 1985년 처음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해온 대한민국의 대표 승용차 브랜드일 뿐 아니라,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1988년 쏘나타, 1993년 쏘나타2, 1998년 EF 쏘나타, 2004년 NF 쏘나타, 2009년 YF 쏘나타에 이르기까지 매번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 혁신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를 새로 써내려 왔습니다. 이제는 쏘나타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지금의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돈과 시간을, 기술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과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에 몰두하지만 쏘나타의 시작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쏘나타의 발자취를 돌아봅시다.

1세대, 소(牛)나 타는 고급자동차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 1세대 쏘나타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 1세대 쏘나타1980년대, 대한민국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며 새로운 소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관심은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표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포니, 엑셀 등의 소형차보다 더 크고 넓은 중형차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형 세단 시장은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대우 로얄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로얄 시리즈와 맞붙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1985년 11월,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를 제품 콘셉트로 내걸고 첫 소나타를 출시했습니다. 소나타라는 이름은 16세기 바로크 시대 이후 발달한 기악을 위한 독주곡이자 실내악을 지칭하는 단어, 소나타(sonata)에서 유래했습니다. 고도의 연주기술이 필요하면서도 강한 개성이 드러나는 4개의 악장이 조합한 소나타처럼, 고도의 종합 예술 수준의 차량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또 달리는 차량 안에서도 소나타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소음이 적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름의 취지와 맞게 현대차는 파격적인 첨단 사양들을 탑재하여 첫 소나타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인기배우 신성일이 소나타의 1호 계약자가 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죠. 하지만 소나타는 경제적인 중형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기반 모델 스텔라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하고 라이벌인 대우자동차로부터 이른바 “소(牛)나 타는 자동차”라고 비아냥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별명이 붙은 소나타는 결국 출시 3개월 만에 소나타에서 쏘나타로 차명을 변경했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 외에도 다양한 마케팅으로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결국 그해 12월에 쏘나타는 단종되었습니다. 1세대 쏘나타는 쏘나타 역사의 시작이지만 흑역사이기도 한다는 걸 현대차가 인정하는 걸까요? 2003년까지 현대차는 스스로 1세대 쏘나타를 쏘나타의 계보에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2세대, 첫 중형차 수출의 주인공

수출을 위해 상품 경쟁력을 높인 2세대 쏘나타수출을 위해 상품 경쟁력을 높인 2세대 쏘나타그렇게 역사로만 남을 줄 알았던 쏘나타가 1998년 6월 2세대로 재탄생했습니다. 2세대 쏘나타는 수출 전략형 중형 차종으로 생산되었는데, 쏘나타 1세대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다는 미국 딜러들의 의견에 힘입어 차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세대 쏘나타의 당시 광고 카피는 ‘세계 최신 스타일의 21세기 하이테크 세단’이었습니다. 우주선 뺨치는 광고카피 덕분인지 2세대 쏘나타는 사전계약 한 달 만에 1만 대가 계약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세대 쏘나타는 미국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일본의 캠리, 어코드 등과 비교평가 테스트를 거치며 수출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상품경쟁력을 끌어올린 결과물이었습니다. 마침내 1988년 11월 16일 쏘나타 3,277대가 미국행 배에 선적되며 중형차로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었습니다. 북미 진출과 함께 캐나다에서도 생산되기도 했는데, 캐나다 퀘백 브로몽에 현지 공장을 세워 한국에서 개발된 승용차 최초로 타국에서 생산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 당시 독일 모델을 들여온 경쟁사에 맞서 국내 전체 차종 통합 판매 3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쟁 모델인 토요타 캠리와 혼다자동차 어코드를 넘어서지는 못했고, 1995년 캐나다 공장 또한 폐쇄하게 되었습니다.

3세대, 엠블럼을 떼면 서울대에 간다?

국내 중형차 대중화 시대를 연 3세대 쏘나타국내 중형차 대중화 시대를 연 3세대 쏘나타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중형차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해외 경쟁 또한 치열해졌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대한민국 중형 세단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목표로 1993년 5월, 3세대 쏘나타2를 선보였습니다. 쏘나타2는 지금까지도 자동차 전문가들이 시리즈 최고의 디자인으로 꼽을 만큼 우수한 디자인을 채택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33개월 동안 무려 60만대를 판매하며 전 국민적인 중형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60만대의 자동차가 보급된 현재로선 매우 작은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자동차 시장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는 독보적인 수치입니다. 쏘나타2는 예상 소비자였던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층에서도 사랑을 받아 당시 성행했던 오렌지족과 야타족들이 즐겨 타는 차로 쏘나타가 인기가 많았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될까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디자인, 3세대 쏘나타 페이스 리프트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디자인,
3세대 쏘나타 페이스 리프트
현대차는 1996년 2월 쏘나타2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쏘나타3를 선보였습니다. 4세대 모델로 오해하기 딱 좋도록 모델명 뒤의 숫자만 바꾼 이름을 사용했지만 엄연히 페이스 리프트 모델입니다. 쏘나타3는 상품성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쉽게도 헤드램프 디자인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기존 일(一 )자 형태의 헤드램프에 원형과 타원형을 이용해 변화를 줬는데, 이 모양이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차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한동안 호사가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1985년 1세대 모델 출시 후 11년만인 1996년 기준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하며 쏘나타의 상승세를 이어가기엔 충분했습니다. 1996년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당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최우수 자동차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으로 상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입시 속설로 S와 III가 빠져있는 오나타입시 속설로 S와 III가 빠져있는 오나타쏘나타3에 얽힌 아주 재미있는 속설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입시 속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은 아마 현대 쏘나타가 아닐까 싶은데요. 쏘나타의 엠블럼 ‘S’를 가지면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는 속설이 유행하면서 수험생들에 의한 엠블럼 도난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이 속설로 인한 현대자동차의 피해는 쏘나타3가 출시된 1996년 이후 정점을 찍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 S 글자 외에도 III(3)를 가지면 수능에서 300점 이상의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속설이 유행했기 때문이죠. 거리 곳곳에는 엠블럼 중 S와 III를 도난당한 오나타(ONATA)가 속출했습니다. 소나타 운전자들의 항의가 불거지면서 현대자동차는 수험생에게 뜯긴 것으로 추정되는 쏘나타3에 뜯겨나간 S나 III를 달아주거나 전체 엠블럼을 교체하는 서비스를 진행했습니다. 1997년 현대자동차가 추산한 피해 차종은 3만 6천 여 대였으며, 엠블럼의 가격은 개당 1,300원이었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아예 S와 III만 따로 만들어 영업점에서 고등학생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쏘나타3의 후속 모델 EF 쏘나타를 출시하며 엠블럼의 재질을 기존의 고무 대신 손톱으로 떼어내기 어려운 플라스틱으로 바꿨으며, 디자인도 글자 하나만 떼어낼 수 없는 일체형으로 변경했습니다.

4세대, 쏘나타냐? 쏘나타가 아니냐? 새로운 중형차의 기준

브랜드 가치 혁신의 일등 공신, 뉴 EF 쏘나타브랜드 가치 혁신의 일등 공신, 뉴 EF 쏘나타1998년 3월, 현대차는 대한민국 중형차의 기술 독립을 선언하며 EF 쏘나타를 출시했습니다. EF 쏘나타는 역대 쏘나타 모델 중 유일하게 뒷 번호판이 트렁크가 아닌 범퍼에 부착되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바로 기술력인데, EF 쏘나타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175마력의 2,500cc 델타 엔진과 인공지능 하이벡(HIVEC)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기술력을 알렸으며 뛰어난 승차감 구현으로 패밀리 세단의 장점을 갖췄습니다. 이때부터 크라이슬러(Chrysler)로부터 엔진을 공급받던 현대자동차는 역으로 두 회사들에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4세대 쏘나타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출시 당시 IMF 외환위기 여파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1999년 2월부터 2000년 8월까지 19개월간 연속으로 국내 전 차종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미 시장에서 한국도 제대로 된 차를 만든다는 평가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1월, 현대차는 EF 쏘나타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로 뉴 EF 쏘나타를 출시했습니다. 기존 쏘나타의 전장을 늘려 준대형급에 준하는 차체 크기를 갖췄으며, 쏘나타3에서 발전한 감각의 디자인을 더했고, 운전석 에어백과 ABS를 기본 장비로 굳히며 안전성에 신경을 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뉴 EF 쏘나타는 2004년 미국 JD파워가 선정하는 신차품질조사(IQS)에서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하는 쾌거도 일궈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비웃음거리였던 현대자동차가 쏘나타를 앞세워 1위를 차지하자 당시 외신은 ‘지구는 평평하다’는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가치 혁신의 일등 공신이 된 뉴 EF 쏘나타는 2002년 12월부터 중국 생산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지금까지 중국 현지에서 전략 중형차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5세대, 세계 수준의 기술력

프리미엄 중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 NF 쏘나타프리미엄 중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 NF 쏘나타2004년 9월, 현대차는 ‘세계 초일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대표차 개발’을 목표로 완성된 NF 쏘나타를 출시했습니다. 프로젝트명 NF가 의미하는 불멸의 명성(Never ending Fame)은 쏘나타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자동차로 영원히 그 명성을 이어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NF소나타의 경우 해외의 캠리, 알티마, 어코드와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개발되어 품질이나 성능 등 여러 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기존 동급 최고 수준의 차체 크기를 확보한데다, 46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한 세타 엔진을 탑재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단숨에 끌어올린 품질과 성능이지만 호평을 받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후 세타 엔진은 초기 현대차에 엔진을 공급했던 미쓰비시를 비롯해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의 크라이슬러에 역수출될 만큼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해외의 인정을 바탕으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준공과 함께 2005년 5월부터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북미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습니다. NF 소나타는 일본에서도 판매가 되었는데, 일본 산업 디자인 진흥회로부터 수입 승용차 부문 굿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5세대 쏘나타는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을 엿볼 수 있는 모델입니다. 스포티 트림으로도 출시되며 젊은 층의 관심을 끌기도 했고, 쏘나타 최초로 디젤 엔진을 단 것도 5세대 쏘나타였습니다. 현대차는 2006년 NF 쏘나타에 디젤 엔진을 추가하며 승용 디젤의 가능성을 시험했으나 당시 상대적으로 디젤 엔진 성능이 부족했고, 연비 또한 휘발유 모델과 큰 차이를 벌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결국 세금 체계의 영향 등으로 모델 판매량 자체가 미미했고, 최초로 디젤 엔진을 적용한 쏘나타 역시 판매 대수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NF 쏘나타는 2009년 9월 6세대 쏘나타에 자리를 넘기며 단종됐지만, 영업용은 꾸준한 인기로 2014년 3월까지 판매되어 쏘나타 역사 중 1/3 이상을 책임진 최장수 모델이 되었습니다.

6세대, 가솔린에서 터보, 그리고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적용한 디자인, YF 쏘나타플루이딕 스컬프처를 적용한 디자인, YF 쏘나타2009년 9월, 현대차는 자사 디자인에 정체성 그 자체를 담아 6세대 YF 쏘나타를 출시했습니다. 현대차 미국 디자인센터 안드레 허드슨(Andre Hudso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YF 쏘나타는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가 최초로 적용돼 기존 쏘나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과감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쿠페형 루프 디자인 때문에 실내 머리 공간이 줄어드는 등 호불호가 크게 나뉘었습니다. 심지어 현대차에서는 ‘난’을 테마로 한 디자인으로, 난의 품격 있는 선을 쏘나타에 접목했다고 주장하지만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삼엽충’ 디자인으로 불리기도 했죠. 이에 기아 K5에 밀려 처음으로 월간판매 1위를 놓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가족형 세단으로 3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고객층에게 어필한 모델인 YF 쏘나타는 엔진 성능을 대폭 향상했는데, 이후 더욱 강력한 엔진으로 대체를 거듭하며 변속효율 및 연비 향상을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YF 쏘나타는 중국에서 현대자동차 중형 모델 최초로 10만대를 판매하고, 북미 지역의 각종 자동차 전문지 및 조사기관의 패밀리 세단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베스트 중형차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2011년 북미 시장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토요타와 혼다의 생산 부진에 힘입어 중형차 시장 월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6세대 쏘나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2011년 5월 국내 최초의 중형 하이브리드인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며 국내 친환경차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7세대, 7번의 진화, 7가지 라인업으로 탄생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한 월드 프리미엄 중형 세단, LF 쏘나타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한
월드 프리미엄 중형 세단, LF 쏘나타
YF 쏘나타 등장 이후 불과 4년 6개월 만인 2014년 3월, 완전변경모델인 LF 쏘나타가 등장했습니다. 완전변경모델을 개발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6년은 걸린다는 것이 당시 자동차업계에서 통용되는 정설이었습니다. 2014년 등장한 7세대 쏘나타는 현대차가 얼마나 빠르게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를 따라잡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7세대로 새롭게 태어난 LF 쏘나타는 현대차의 최신 기술력이 모두 집약된 월드 프리미엄 중형 세단입니다. 총 개발비 4,500억 원을 투입해 3년 동안 개발한 모델로, 현대차는 오직 디자인, 주행성능, 안전성 등 자동차의 기본에 충실한 차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기본기 혁신을 화두로 7세대 쏘나타는 ‘플루이딕 스컬프처 2.0’ 디자인을 채용하여 안정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삼엽충’이라고 불리는 6세대의 뼈아픈 트라우마를 걷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품질을 극대화한 인간공학적 설계, 차체강성 강화 및 플랫폼 개선으로 안전성과 역동적인 주행성능을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공차 중량이 증가해 연비가 떨어진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연비를 제외한 전반적인 상품성의 향상은 부인할 수 없는 모델로, 가솔린 모델을 비롯해 가솔린 터보, 디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까지 총 7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가장 풍부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8세대, ‘아빠차’에서 ‘오빠차’로

젊은 층을 겨냥한 쏘나타 8세대젊은 층을 겨냥한 쏘나타 8세대2019년 출시된 8세대 쏘나타는 ‘이름’ 빼고 모든 것을 바꿨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디자인을 탑재하여 출시됐습니다. ‘아빠 차’라는 수식어를 탈피하겠다는 듯이 이전의 무난한 디자인을 벗어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쏘나타가 더는 패밀리 세단이 아니라 젊은 층에 어필하는 모델로 탈바꿈했다는 데엔 이견이 없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8세대 쏘나타에 적용된 3세대 플랫폼은 세단과 SUV 등 다양한 차종에 적용할 수 있고 전장 장비 등 미래 차에 맞는 설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쏘나타 판매량 이상의 기술적 의미를 담은 것이죠.

1985년 출시 이래로 쏘나타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 세대마다 큰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이제 쏘나타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중형 세단의 역사이자 쏘나타와 함께해 온 우리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2018년까지 전 세계에서 팔린 쏘나타를 일렬로 세우면 길이(4만 1213㎞)가 지구의 둘레(4만 6250㎞)를 거의 한 바퀴 채울 정도라고 합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역사와 함께한 쏘나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기대가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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